2017년 5월 31일 수요일

민수기 제10과

10과 행군 중에 생긴 일 (4) - 백성들의 원망과 그 결과 (1)
민수기 14
 
본문을 읽으면서 1-5번 질문에 답을 써 봅시다.
 
1) 열두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1-4)
2) 백성들의 반응에 대한 갈렙과 여호수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7-9)
3)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11-12)
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의 기도를 정리해 봅시다. (13-18)
참고. 시편 231-3절, 야고보서 413-15
5)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20-25)

열두 정탐꾼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어귀에서 전쟁 중에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여기까지 인도해 온 모세아 아론을 원망했고,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면서 모세와는 다른 지도자를 세우려고 합니다. 이런 백성들의 원망섞인 반응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이 좋은 땅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인도하실테니 제발 거역하지 말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겁내지 말자 이렇게 설득합니다. 백성들이 이 둘을 돌로 치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등장하셔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없애 버리고 새로 민족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그 핵심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이들을 죽이시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칫 주변 국가들이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광야에서 다 죽게 만들었다고 놀릴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시편23편이나 야고보서 4장을 보면, 구약의 성도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뜻 대로 사는 것을 가장 높은 가치로 두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죄를 사하겠지만,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6)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무엇이 달랐습니까?
14:9
잠언 29:25

같은 기간동안 같은 땅과 같은 사람들을 살폈는데갈렙과 여호수아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요? 9절에 보면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보호라는 말은 그늘이라는 말과 같이 쓰입니다덥고 직사광선이 강한 광야지역임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겠습니다그들에게는 그늘이 없으되 우리에게는 있습니다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늘 이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갈렙과 여호수아는 정탐기간동안 그 신이 직접 구름을 인도하고 지키는 백성은 이스라엘뿐임을 보았던 것입니다따라서비록 가나안 땅에 기골이 장대한 거인들과 이름을 떨친 용사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더라도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외친 것입니다이들의 믿음은 잠언의 표현을 빌어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9:25) 

14:22
출애굽기 15:1-18
야고보서 3:9-10
신명기 31:19-22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이적을 다 봤다고 선언하십니다. 즉 다 겪고 나서도 어찌 이럴 수 있냐는 힐난입니다. 사실, 이들이 출애굽을 한 지는 채 2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불렀던 노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11) ...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15) ...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17) ... ” 신명기 3119-22절을 보면 모세가 고별설교를 하며 중요한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의 기억은 선별적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기억해야 할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고 그 반대로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을 기억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 벤 노래는 나이가 들어서도 흥얼거리게 됩니다. 노래의 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그들이 흥얼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그들의 죄를 정죄하는 도구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홍해의 이적을 보며 하나님을 높이 찬송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는데, 이들의 원망이 부당한 것임을 바로 이들이 소리높여 찬송했던 그 노래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표현대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14:23

그런데,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소리높여 찬송했다고 해서 현실 문제가 다 제거되는 것도 어렵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우리보다 덩치가 큰 거인들이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홍해는 과거이고 가나안 거인들은 지금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23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라고 떼쓴 것도 아니고, 주실 지 안 주실 지 불분명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주시겠다고 맹세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적을 체험하고 소리높여 찬송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셨고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면 어느 순간 현실의 벽 때문에 하나님을 멸시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악했고 특별히 기억력이 좋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우리보다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한 폭이 적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14:24

갈렙의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나를 온전히 따랐다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히 따른다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여기 22-23절을 통해서 살펴본 바로는, 하나님이 베푸신 이적과 그 약속을 잘 기억하고 믿고 잘 붙드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여타 백성들과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기적적인 일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인류 역사상 홍해의 갈라짐도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홍해의 갈라짐에 비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그 일이 딴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홍해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에 비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약속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더 큰 이적을 경험하고 더 큰 약속을 받은 우리들 앞에도 이스라엘 백성같은 현실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갈렙과 여호수아의 일을 다시 상기해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 입에 벤 노래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고,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성경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 데, 우리가 온 몸으로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거부한다면 여기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제9과

9과 행군 중에 생긴 일 (3) - 가나안 땅을 정탐함
민수기 13
 
지도를 참고하여 오늘 본문을 한 번 읽어가면서 질문에 답해 봅시다.

1) 가나안 땅 정탐을 맡은 지파와 그 이름을 써 봅시다. (4-15)
2) 정탐꾼들에게 모세가 요청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18-20)
3) 정탐꾼들이 보고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27-29)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모두 열 두 명의 정탐꾼을 뽑습니다여기에는 역시 레위 지파가 빠져있고대신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지파씩으로 참여합니다모세는 정탐꾼들에게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성을 지어놓고 사는지 자신들처럼 텐트를 치고 사는지농사짓기에 적당한 땅인지 등을 살피라 했고 실제 과일을 하나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모세의 명에 따라 정탐꾼들은 자신의 정탐이 마치고 난 뒤 돌아와서땅은 상당히 비옥하나 거주민들이 기골이 장대하고지어놓은 성이 꽤 튼튼하다는 보고를 합니다. 

4) 모세가 호세아를 여호수아로 개명했습니다. 이 의미를 살펴봅시다. (16)

모세는 열 두 정탐꾼을 세운 뒤 정탐을 떠나기 전에호세아를 여호수아로 바꿔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호세아는 구원이라는 뜻인데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입니다히브리어 여호수아의 헬라어식 발음이 예수입니다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뜻하는데적진으로 들어가려는 정탐꾼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기를 원한다는 이 장면은 정탐꾼들 모두에게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5) 네겝(22)은 어디입니까?
참고. 창세기 13:1

게다가, 이들이 남쪽에서 네겝이라는 곳을 지나서 헤브론으로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겝 혹은 네게브라 불리는 곳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남쪽 지역인데,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지나갔던 지역입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던 자기 조상 아브라함이 올라갔던 그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가는 정탐꾼들의 마음이 비장하거나 벅차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6) 헤브론은 애굽의 소안과 비교됩니다. 이 의미를 살펴봅시다. (22)
참고. 33, 시편 78:12, 43
 
네겝으로 올라가서 처음 만난 성읍은 헤브론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헤브론은 애굽의 소안보다 7년 먼저 성이 건설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아히만과 세세와 달매가 있었다 하는데, 아마도 그 당시에 용맹함으로 이름을 날렸던 용사들의 이름으로 보입니다. 시편 78편을 보면 애굽의 대표적인 도시로 소안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오래된 아파트의 시세가 별로입니다만, 이 당시 애굽은 큰 제국이었고 그 나라에서 대표적인 도시가 소안이었는데, 그 소안보다 먼저 헤브론이 건설되었다는 사실은, 그리고 용사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적어도 소안에 못지 않은 기술력이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7) “능히 이기리라는 갈렙의 말(30)에 다른 정탐꾼들은 다시 자신들의 주장을 폅니다.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31-33)
참고. 창세기 6:3-4, 10:9-10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정탐꾼들이 와서 모세에게 보고했던 말 - 그 땅 거주민이 강하고 성읍이 견고하고 심히 크며 아낙 자손을 보았다 (28) - 은 상당히 타당하고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보고에 백성들이 소란스러워하자 정탐꾼 중 하나였던 갈렙은 그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30)고 말합니다. 갈렙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려 합니다. 갈렙의 반박에 정탐꾼들은 다시 자신들의 주장을 늘어놓습니다. 좀 전까지 비옥한 땅이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사실 그 땅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을 바꿉니다. 게다가 자신딜이 본 아낙 자손들은 네피림, 즉 거인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네피림과 관련된 기사는 창세기에 두 번 등장합니다. 하나는 6장에서 고대에 이름을 날린 사람들로 등장하는 장면이고, 나머지 하나는 10장에서 바벨성 사건의 주모자로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둘 다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대다수 정탐꾼들이 그 땅을 칠 수 없다 이야기하면서 기골이 장대한 거인을 언급하는 것이 일견 타당하고 객관적입니다만, 반역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사람들을 상징하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대적할 수 없을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는 능히 대적하실 수 있다는 모순된 주장이 자신들로 모르게 자신들의 입 밖으로 나온 셈입니다.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민수기 제7과

민수기 7행군 중에 생긴 일 (1) (11)
 
1) 다베라에서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1-3)
 
오늘 본문에서는 행군 초기에 생긴 일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먼저 1-3절에서는 다베라에서 백성이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한 기록이 나옵니다. 악한 말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이어지는 본문과 이들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모든 물자가 부족한) 광야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Now the people complained about their hardships in the hearing of the LORD...” (NIV) 이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고 그 진노하심을 보이시는 방편으로 진영 끝자락을 불로 태우십니다. 다급한 백성들은 모세에게 부르짖었고 모세는 하나님께 간청해서 이 불은 꺼집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만, 오늘 본문과 연관된 시편인 7821절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같이 타올랐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실제로 진영 끝자락을 불로 태우셔서 진노가 크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일종의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2)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일어난 일을 정리해 봅시다. (4-35)
) 원인?
) 하나님의 대답
) 결과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합니다. 고기와 관련된 백성들의 불평과 고기를 먹게 되는 일, 그리고 칠십 장로가 세워지는 사건입니다. 고기와 관련된 백성들의 불평은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의 탐욕”(4)으로 시작됩니다. 아마도 이들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나왔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이들의 원망은 만나 외에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원망을 들은 모세도 지쳐서 하나님께 차라리 내 목숨을 거둬가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대답을 주십니다. 지친 모세의 짐을 나눠질 70명의 장로들을 세우겠다는 것이 하나였고, 백성들의 요청대로 한달동안 신물나도록 고기를 먹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모세가 세운 장로 70인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모두가 예언을 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엄청난 분량의 메추라기를 잡게 되었지만 욕심을 내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 고기를 맛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2-2) 이 사건이 출애굽기 16장에 기록된 메추라기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런데, 메추라기가 내리는 장면은 출애굽기 16장에도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 애굽에서는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불평의 요지였습니다. 출애굽기 16:1을 보면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 , 출애굽한지 한달쯤 된 시점의 일이리 하니, 아마도 이때까지는 출애굽하면서 준비해온 식량으로 버틸 수 있었을 것이고 이제 먹을 것이 바닥났으리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불평을 들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오늘 민수기 본문의 불평으로 유추해보자면 메추라기는 이날 한번만 주셨던 것 같고, 만나는 매일 공급해 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민수기 11장은 출애굽한 지 일년이 지난 시점이며 여전히 만나를 공급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지금 백성들의 원망은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을 처음 맞닥뜨린 출애굽기 16장의 상황과는 다릅니다. 즉, 1년동안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불평의 요지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이 광야에서의 생존과 관련된 요청이었다면 민수기 11장은 좀 더 나은 것을 얻을 수 없겠냐는 항변에 가까운 요청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차이가 있음을 다른 본문들의 도움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2-3) 시편 78편과 고린도전서 10장을 참고하여 이 사건의 교훈을 다시금 살펴봅시다.
 
시편 78:18-31은 오늘 본문과 출애굽기 16장의 사건을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 그들이 탐욕대로 음식을 구한 것이 결국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20절을 보면 물은 주셨지만 빵과 고기는 못주실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15-16장의 사건을 말하는데, 출애굽기 15장에서 백성들이 광야의 마라라는 곳을 지나면서 물을 얻지 못하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다음 경유지인 엘림에 물이 넘치는 동산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치 앞을 못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만, “모든 자원이 부족한광야로 우리를 인도한 하나님은 결국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신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시편 기자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여긴 뭐든지 부족한 광야인데 하나님이신들 무슨 재간이 있으십니까? 생존에 필요한 물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빵은요? 고기는요? 이런 백성들 앞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어떤 식물이 자라게끔 하시거나 열매를 따먹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먹을 것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 하늘에서만나를 내려주시고, “바람을 일으켜서메추라기를 주십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사는 데에 필수적인 음식을 해결하셨다는 기록입니다만, 동시에 먹고 마시는 것이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는 백성들(78:22)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게 하는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고린도교회에 쓴 편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은 만나와 메추라기는 그러 그런 먹을 것이 아니라 "신령한(spiritual)" 음식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0:3)
이 양식은 이들이 아주 배불리 먹을만큼 풍족했습니다. (78:29) 배불리 먹었다는 표현으로 보아 아마도 출애굽기 16장을 언급하는 듯 합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던 이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일년이 조금 지나자 오늘 본문인 민수기 11장의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원망의 결과 고기를 받지만 이들은 배불리 먹기는커녕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을 누리지도 못한 채 죽습니다. (78:30-31) 이 시편 기자는 여기서 욕심을 내는 것(탐욕)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불신)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욕심은 사실상 믿지 못함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스스로 부각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채워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며 이 욕심을 채워줄 대상도 결국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이런 욕심이 악한 것이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들 상당수가 하나님께 멸망당한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지 말 것을 경고하며 조심하라는 뜻이라 설명해 줍니다. (고전 10:6, 11) 
오늘날 우리들은 여러모로 풍족한 시대를 산다고 합니다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물과 빵과 고기처럼, 여전히 우리 개개인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고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으며 힘든 것이 있기도 합니다. 이를 얻거나 개선하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애쓰고 힘쓸 때, 그 옛날 이스라엘을 신령한 것으로 채워주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결국 그러실 것이라는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악해지지 않고 욕심에 굴복하지 않고 원망하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민수기 11장의 사건이 기록되어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유이며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