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행군 중에 생긴 일 (4) - 백성들의 원망과 그 결과 (1)
민수기 14장
본문을 읽으면서 1-5번 질문에 답을 써 봅시다.
1) 열두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1-4)
2) 백성들의 반응에 대한 갈렙과 여호수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7-9)
3)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11-12)
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의 기도를 정리해 봅시다. (13-18)
참고. 시편 23편1-3절, 야고보서 4장13-15절
5)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20-25)
열두 정탐꾼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어귀에서 전쟁 중에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여기까지 인도해 온 모세아 아론을 원망했고,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면서 모세와는 다른 지도자를 세우려고 합니다. 이런 백성들의 원망섞인 반응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이 좋은 땅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인도하실테니 제발 거역하지 말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겁내지 말자 이렇게 설득합니다. 백성들이 이 둘을 돌로 치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등장하셔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없애 버리고 새로 민족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그 핵심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이들을 죽이시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칫 주변 국가들이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광야에서 다 죽게 만들었다고 놀릴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시편23편이나 야고보서 4장을 보면, 구약의 성도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뜻 대로 사는 것을 가장 높은 가치로 두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죄를 사하겠지만,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6)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무엇이 달랐습니까?
14:9
잠언 29:25
같은 기간동안 같은 땅과 같은 사람들을 살폈는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요? 9절에 보면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보호라는 말은 그늘이라는 말과 같이 쓰입니다. 덥고 직사광선이 강한 광야지역임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겠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늘이 없으되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늘 이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정탐기간동안 그 신이 직접 구름을 인도하고 지키는 백성은 이스라엘뿐임을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가나안 땅에 기골이 장대한 거인들과 이름을 떨친 용사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외친 것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잠언의 표현을 빌어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29:25)
14:22
출애굽기 15:1-18
야고보서 3:9-10
신명기 31:19-22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이적을 다 봤다”고 선언하십니다. 즉 다 겪고 나서도 어찌 이럴 수 있냐는 힐난입니다. 사실, 이들이 출애굽을 한 지는 채 2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불렀던 노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11) ...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15) ...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17) ... ” 신명기 31장19-22절을 보면 모세가 고별설교를 하며 중요한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의 기억은 선별적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기억해야 할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고 그 반대로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을 기억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 벤 노래는 나이가 들어서도 흥얼거리게 됩니다. 노래의 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그들이 흥얼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그들의 죄를 정죄하는 도구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홍해의 이적을 보며 하나님을 높이 찬송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있는데, 이들의 원망이 부당한 것임을 바로 이들이 소리높여 찬송했던 그 노래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표현대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14:23
그런데,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 소리높여 찬송했다고 해서 현실 문제가 다 제거되는 것도 어렵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우리보다 덩치가 큰 거인들이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홍해는 과거이고 가나안 거인들은 지금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23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라고 떼쓴 것도 아니고, 주실 지 안 주실 지 불분명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주시겠다고 “맹세”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적을 체험하고 소리높여 찬송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셨고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면 어느 순간 현실의 벽 때문에 하나님을 멸시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히 악했고 특별히 기억력이 좋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우리보다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한 폭이 적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14:24
갈렙의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나를 온전히 따랐다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히 따른다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여기 22-23절을 통해서 살펴본 바로는, 하나님이 베푸신 이적과 그 약속을 잘 기억하고 믿고 잘 붙드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여타 백성들과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기적적인 일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인류 역사상 홍해의 갈라짐도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홍해의 갈라짐에 비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그 일이 딴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홍해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에 비할 바가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약속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더 큰 이적을 경험하고 더 큰 약속을 받은 우리들 앞에도 이스라엘 백성같은 현실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갈렙과 여호수아의 일을 다시 상기해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 입에 벤 노래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고,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성경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 데, 우리가 온 몸으로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거부한다면 여기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겠기 때문입니다.